
어떻게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게 되셨나요? 전공을 선택하면서 가지셨던 기대나 생각 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20세기의 마지막 해에 99학번으로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여 온 나라가 2002년 월드컵으로 축제와 같은 분위기에 들떠있던 2002년 여름에 졸업을 하게 되었으니, 어느새 사회복지학과가 원래부터 저를 규정해왔던 정체성과도 같이 되어버려서,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하게 된 그 때를 더듬어 보자면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꺼내서 한참을 되돌려 보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만큼 ‘사회복지’라는 화두가 제 삶에서 친숙하고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1996년도에 다른 학교 이과계열 학과에 진학하여 2년 남짓 대학생활을 하다가 문과계열 학과로 전공을 바꾸고자 휴학을 하고 수능시험을 다시 치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도 문과로 변경하고 싶어서 알아보았으나 사정이 녹록지 않았고, 결국 적성과는 무관하게 이과 계열에서 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 의식으로 어떻게든 열심히 버텨보려 하였고, 대학 생활 나름의 즐거움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가 바라는 삶의 모습과는 멀어져가고, 적응하기 어려운 과목들을 접하게 되면서 한계에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겉으로 드러나는 활발한 학과 생활과는 달리 내면에서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느껴져서 심리상담을 신청해 보았는데, 그 때 받았던 검사가 ‘MBTI’였고, 제가 ‘INFJ'라는 유형에 해당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처음 만난 분들과 건네는 인사가 MBTI 유형을 묻는 질문이라고 하니, ’INFJ‘ 유형의 사람들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설명은 생략해도 되겠지요?
이렇게 저는 철저한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 어렴풋한 상을 새로운 진로와 접목시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저희 어머니가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휴학을 하고 문과로 바꾸어 수능 시험을 다시 치르겠다는 목표만 있었을 뿐 어느 학과로 진학할지 또 다시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마침 외가 친척 중에 사회복지현장에 계시는 분들이 있으셔서 사회복지학과에 대해 알고 계셨던 어머니가 저에게 사회복지학과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 속에 새롭게 모색하는 진로이니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회복지학’ 혹은 ‘사회복지’에 대해 알면 알수록 흥미가 느껴지고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도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8년도에 제 생애 두 번째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서, 인근의 종합사회복지관에서 두 달 정도 자원봉사 겸 사회복지현장 탐색의 시간을 거치며 최종적으로 저의 적성을 점검해 본 후 드디어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사회복지학과가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사회복지학과에서 보냈던 1999년부터 2002년의 시기는 20대의 충만한 열정을 맘껏 꽃피운 꿈같은 계절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에 대해서 제 나름의 지식과 정보를 갖추고 사회복지학을 공부할 준비도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1학년 1학기 ‘사회복지개론’ 수업 중 교수님께서 제시하신 사회복지의 정의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기존의 틀이 깨어지며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는 기계적인 학습을 요구하는 기성품과 같은 고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앞으로 제가 스스로 공부하며 발전시켜야 할 개념이자 그 개념으로부터 뻗어나갈 구체적인 제도와 실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다양한 분야의 전공 수업에 진지한 호기심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팀 과제를 하려면 학교 전산실의 PC 앞에 자리를 잡거나 팀원 중 한 명의 집에 모두 모여 밤을 세워가며 레포트를 작성하곤 했습니다. 이제는 밤을 샐 수 없는 체력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레포트를 준비하며 자료를 찾아보고 팀원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 자체가 무척 즐겁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제출 기한에 맞추어 보고서를 제출하고 나면 신나는 방학이 시작되고, 녹두(신림9동 고시촌을 ‘녹두’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생소할 수도 있겠네요)에 모여 종강파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학과 내 학회 활동도 중요한 활력소가 되어 주었는데, 저는 예술학회인 ‘달세뇨’에 소속되어 학회원들과 같이 영화도 보고 세미나도 하며, 취미를 쓰라고 하면 가장 먼저 적곤 하는 ‘영화관람’ 활동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 때 공부 방법, 진로탐색 방법, 방황, 결심,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 그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겠다 하는 것, 혹은 아쉬움 등이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수능 시험을 다시 치르고 3년 만에 다시 새내기로 입학하게 되어서 그런지 더욱 성실히 학부 생활을 보내야한다는 책임감도 생기는 한편, 저도 모르게 조급한 마음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1학년 1학기부터 졸업학기까지의 전공 수업들과 3학년 여름방학에 있었던 사회복지현장실습, 전공 수업 못지않게 몰입하였던 다양한 분야의 교양 수업까지 되돌아보면 배움과 성장을 위한 충만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뒤늦은 출발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도 앞서서 호기롭게 조기졸업을 신청하고 3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되었는데, 대학원에 진학해서 학업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는 반면, 제가 배운 것을 사회복지현장에서 실천해 보고 싶은 설익은 의욕도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게 되어, 결과적으로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졸업만 일찍 해 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괜히 조기졸업을 하며 스스로를 채근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여전히 25년째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99학번 동기들과 더 많은 시간을 나눌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양한 진로에 진출해 있는 선배님들의 조언도 들어보면서 여유를 갖고 진로를 탐색해 보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에 젖어 보기도 합니다. 어쩌면 먼 길을 돌아 사회복지학과와 만나게 된 제 개인적인 이력으로 인해 그 반작용으로 실패 없는 지름길을 찾아가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더 긴 방황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겠죠.
나에게 맞는 진로를 찾아가기까지 거쳐야 할 과정과 축적해야 할 경험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은 각자에게 고유한 여정이니 우리 후배님들도 각자의 방향과 속도에 따라 진로를 찾아가는 여정을 탐색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직장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어떤 고민의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졸업부터 했다는 저의 부끄러운 고백을 이미 들으셨으니, 졸업 후 진로를 찾아가는(적성은 찾았으나 적성을 구현할 구체적인 직업은 다시 한 번 물음표의 소용돌이 속으로) 여정이 얼마나 험난했을지 이미 짐작하셨을 것 같습니다. 졸업 후에 저는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습니다. 사회복지기관에 취업을 하고자 입사 원서를 내 보다가, 공기업 취업으로 방향을 바꾸어 입사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짧은 경력이지만 공공기관에서도 근무해 보고, 그 보다 더 짧은 기간 사회복지기관에서도 일을 해 보았습니다. 부끄러워서 자세히 더 말할 수 없는 이력은 직접 대면의 기회가 생길 때 용기를 내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제 시행착오가 후배님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요.
학부 시절 미학이나 문화·예술 계통의 교양 과목도 무척 흥미롭게 수강하였던 저는 ‘문화복지’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일종의 일탈을 시도하여 타 대학의 문화연구 협동과정 대학원에도 진학을 하게 됩니다. 2년의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으나 논문에 대한 상을 잡지 못하고 또 다시 거대한 물음표 앞에 선 그 때, 저희 아버지가 새롭게 도입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제도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며, 긴 방황 속에서도 제가 놓지 않고 있었던 ‘사회복지’를 법학 공부와 접목하여 공익 분야의 변호사로 길을 개척해 보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우연히도 오랜만에 연락을 주신 친척 분도 제 안부를 물으시더니 로스쿨 도입 소식을 듣고 제 생각이 나서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고 하셨고요.
그전까지 ‘변호사’가 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지만, 학부 시절 사회복지법제론 수업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며, 사회복지와 법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로스쿨이 추구하는 특성화 영역 중에 공익·인권 분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비전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려고 했던 2008년도에 제 나이가 이미 만으로 31세였기 때문에 진학에 실패할 경우 부담이 더 크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그 당시 부활주일을 앞두고 진행되었던 새벽기도회에 난생 처음 매일 출석을 하며 기도하는 중에(학부 시절에 ‘빛과 소금’이라는 과내 기독인 모임에도 참여했는데, 지금도 카톡방에서 틈틈이 안부를 나누고 있습니다)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지게 되어 매일 조금씩 제 방식대로 준비해 보기로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감사하게도 2009년도에 1기로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으며, 3년의 과정을 마친 후 2012년도에 졸업을 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던 당시 학교 게시판에 올라온 법무부의 법률홈닥터 채용 설명회 공고를 보고 바로 제가 기다려오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졸업 후에 유일하게 법률홈닥터 채용에만 지원하였습니다.
지금 직장에서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사회복지학 전공이 현재 직업 생활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2012. 5.부터 지금까지 법무부 인권국 인권구조과에 소속되어 법률홈닥터 변호사로 근무해 오고 있습니다. 저는 법무부에 채용된 변호사이지만 근무 기관은 법무부가 아닌 서울특별시사회복지협의회입니다. 제가 졸업 후에 유일하게 법률홈닥터 채용에만 지원한 이유를 밝힐 겸 법률홈닥터 제도에 대해서 소개해 드려야겠네요.
법률홈닥터 제도란 법무부 인권국 소속의 변호사가 직접 사회적ㆍ경제적 취약계층을 찾아가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1차 법률서비스(법률상담, 법 교육, 소송절차 안내, 법률구조법인 및 사회복지기관 연계 등. 소송수행은 제외됨)를 제공하는 제도입니다. 법률홈닥터는 지방자지단체, 사회복지협의회, 범죄피해자 원스톱 솔루션 센터 등에 상주하면서 지역사회 복지망을 활용하여 법률복지 수요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법률과 복지를 결합한 종합적인 해결책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법률홈닥터를 한마디로 표현해 본다면, 사회적·경제적 취약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법률주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률홈닥터 변호사가 배치된 기관 및 지역의 특성에 따라 업무 방식이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제 업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은 사회복지기관 출장상담입니다. 정기출장 기관은 거의 대부분 지역사회 노인복지관이며, 법률상담 수요가 있을 때 수시로 사회복지기관에서 출장 상담을 요청해 주시기도 합니다. 법률홈닥터의 법률복지서비스는 단순히 1회적 상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이 겪고 있는 법률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일종의 사례관리와도 유사한 형태로 지속적인 법률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수개월에 걸쳐 법률상담이 진행되기도 하고, 한 분의 의뢰인이 여러 사안으로 법률상담을 요청해 주셔서 복합적인 사례관리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법률상담을 받고 있는 의뢰인 분들이 서류 준비 등 절차 진행에 어려움을 느낄 경우에는 구청의 통합사례관리사 분들이나 사회복지기관의 사회복지사 분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법률홈닥터는 사회복지사 분들과의 협업을 통해 종합적인 법률복지서비스를 실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침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였기에 복지관에 법률상담이나 법률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출장을 가는 일이 친숙하게 느껴졌으며, 의뢰인 분들과 상담을 할 때 사회복지상담의 중요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청과 공감’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이자 사회복지사로서 상담을 할 수 있어서 보다 심층적인 법률복지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진로를 따라가기 위해서 학생들은 어떠한 준비들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준비하는게 유리할까요?
법률복지서비스 업무를 전담하는 법률홈닥터 변호사가 되려면 우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야 하므로,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로스쿨 입학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로스쿨을 졸업한지 오래되어서 아마도 제가 로스쿨 진학에 대한 정보를 전해드리는 것보다는 최근에 졸업한 다른 선배들로부터 생생한 정보를 얻는 것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제가 1기로 로스쿨 입시를 치렀을 때와는 입학 전형이나 제도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고요.
로스쿨 졸업 후 법률홈닥터 변호사로 취업을 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사회복지학 전공자들은 이미 유리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률홈닥터 채용 공고에 안내된 우대사항에 ‘국가공인 사회복지사 자격증 및 사회복지 관련 학위 소지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조기졸업을 한 덕분에 운이 좋게도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시험 없이 학점 이수만으로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법률홈닥터 업무를 하다보면 다양한 법률복지 자원을 활용하게 될 때가 많으므로, 로스쿨 재학 중에 공익·인권 분야와 관련된 기관에서 다양한 실무수습 경험도 쌓고, 기회가 되면 공익·인권 학회 활동에도 참여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지금의 직장에 대해서 만족하시나요? 현재 직장의 근무여건, 미래전망,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 등이 궁금합니다.
사회복지현장에서 취약계층 분들에게 법률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로 근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률홈닥터 업무에 만족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의뢰인 분들의 다양한 사례에 귀 기울이며 공감하고, 법률복지 영역에서 상담자의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제 성격 유형에도 지금의 업무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또한 사회복지사 분들과도 상호작용을 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보람과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업무가 흔히들 법조 직역에 대해 기대하듯이 경제적으로 많은 보상이 따르는 일은 아니지만, 법률복지서비스라는 고유한 업무 영역에 내포된 사회적 가치가, 법률홈닥터와 법률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고, 더 나아가 삶이 변화되는 구체적인 성과들로 빚어져 나오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는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법률복지 분야의 직역에 대한 경제적 보상 또한 늘어난다면 더 많은 분들이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부담 없이 소신을 갖고 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법률홈닥터 업무를 하면서 억지를 부리거나 안타깝게도 무례한 행동을 하는 의뢰인 분들도 간혹 만나게 되어 속상한 순간도 있지만, 그보다는 저희의 작은 도움에도 고마움을 표현해 주시며 저희를 미소 짓게 하는 분들이 더 많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앞서 후배님들에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처럼 20대의 시작부터 진로를 찾아 헤매느라 상대적으로 제게 맞는 일을 찾아 정착한 기간이 짧은 편입니다. 법률홈닥터 변호사로 첫 발을 떼었을 때가 만 나이로 35세였으니까요.
그래서 미래의 계획이라고 하기에는 평범하게 들릴 수도 있는 답변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 꾸준히 법률홈닥터로서 자리를 지켜서 가능하다면 정년도 채우고, 무엇보다도 법률홈닥터 제도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현재 법률홈닥터 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1기로서 법률홈닥터의 지나온 발자취를 정리하고, 훌륭한 동료 변호사님들과 함께 법률홈닥터 제도가 발전해나갈 방향도 같이 모색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보니 뭐가 제일 중요하더라, 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예전에는 시행착오의 과정들이 괜히 낭비된 시간인 것만 같아서 자책감에 빠져들곤 하였는데, 지나오고 나니 삶의 그 어떤 경험도 쓸모없거나 헛된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면의 갈등과 방황의 시간들을 겪어 오면서 느끼게 되었던 외로움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지 모를 외로움으로 눈을 돌리게 하면서,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확장되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길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뗄 수 있게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표현처럼 번번이 거듭되는 시행착오로 인해 스스로 상처를 내곤 하였던 제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조금씩 들여다보게 되고 같이 아파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감과 경청의 중요성을 터득해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패와 시행착오의 시간이 아픔과 상처로 다가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 시간들을 잘 견디어내고 의미를 찾아가다 보면, 분명 내 안에 조개 속 진주와 같이 은은하게 빚어져가는 그 무엇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믿으며 후배님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제 인터뷰를 읽어주실 후배님들을 생각하니 반가움이 앞서서 이미 주어진 분량의 지면을 초과해 길고 긴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말았네요. 저의 진로탐색 여정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며, 이 글을 쓰면서 떠올랐던 ‘아나스타샤’라는 에니메이션의 OST 중 ‘journey to the past'라는 곡의 가사 일부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one step at a time
one hope, then another
who knows where this road may go
어떻게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게 되셨나요? 전공을 선택하면서 가지셨던 기대나 생각 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20세기의 마지막 해에 99학번으로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여 온 나라가 2002년 월드컵으로 축제와 같은 분위기에 들떠있던 2002년 여름에 졸업을 하게 되었으니, 어느새 사회복지학과가 원래부터 저를 규정해왔던 정체성과도 같이 되어버려서,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하게 된 그 때를 더듬어 보자면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꺼내서 한참을 되돌려 보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만큼 ‘사회복지’라는 화두가 제 삶에서 친숙하고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1996년도에 다른 학교 이과계열 학과에 진학하여 2년 남짓 대학생활을 하다가 문과계열 학과로 전공을 바꾸고자 휴학을 하고 수능시험을 다시 치르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도 문과로 변경하고 싶어서 알아보았으나 사정이 녹록지 않았고, 결국 적성과는 무관하게 이과 계열에서 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 의식으로 어떻게든 열심히 버텨보려 하였고, 대학 생활 나름의 즐거움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가 바라는 삶의 모습과는 멀어져가고, 적응하기 어려운 과목들을 접하게 되면서 한계에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겉으로 드러나는 활발한 학과 생활과는 달리 내면에서는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느껴져서 심리상담을 신청해 보았는데, 그 때 받았던 검사가 ‘MBTI’였고, 제가 ‘INFJ'라는 유형에 해당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처음 만난 분들과 건네는 인사가 MBTI 유형을 묻는 질문이라고 하니, ’INFJ‘ 유형의 사람들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설명은 생략해도 되겠지요?
이렇게 저는 철저한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 어렴풋한 상을 새로운 진로와 접목시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저희 어머니가 중요한 조언자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휴학을 하고 문과로 바꾸어 수능 시험을 다시 치르겠다는 목표만 있었을 뿐 어느 학과로 진학할지 또 다시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마침 외가 친척 중에 사회복지현장에 계시는 분들이 있으셔서 사회복지학과에 대해 알고 계셨던 어머니가 저에게 사회복지학과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 속에 새롭게 모색하는 진로이니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회복지학’ 혹은 ‘사회복지’에 대해 알면 알수록 흥미가 느껴지고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도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8년도에 제 생애 두 번째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서, 인근의 종합사회복지관에서 두 달 정도 자원봉사 겸 사회복지현장 탐색의 시간을 거치며 최종적으로 저의 적성을 점검해 본 후 드디어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사회복지학과가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사회복지학과에서 보냈던 1999년부터 2002년의 시기는 20대의 충만한 열정을 맘껏 꽃피운 꿈같은 계절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에 대해서 제 나름의 지식과 정보를 갖추고 사회복지학을 공부할 준비도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1학년 1학기 ‘사회복지개론’ 수업 중 교수님께서 제시하신 사회복지의 정의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기존의 틀이 깨어지며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는 기계적인 학습을 요구하는 기성품과 같은 고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앞으로 제가 스스로 공부하며 발전시켜야 할 개념이자 그 개념으로부터 뻗어나갈 구체적인 제도와 실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다양한 분야의 전공 수업에 진지한 호기심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팀 과제를 하려면 학교 전산실의 PC 앞에 자리를 잡거나 팀원 중 한 명의 집에 모두 모여 밤을 세워가며 레포트를 작성하곤 했습니다. 이제는 밤을 샐 수 없는 체력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레포트를 준비하며 자료를 찾아보고 팀원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 자체가 무척 즐겁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제출 기한에 맞추어 보고서를 제출하고 나면 신나는 방학이 시작되고, 녹두(신림9동 고시촌을 ‘녹두’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생소할 수도 있겠네요)에 모여 종강파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학과 내 학회 활동도 중요한 활력소가 되어 주었는데, 저는 예술학회인 ‘달세뇨’에 소속되어 학회원들과 같이 영화도 보고 세미나도 하며, 취미를 쓰라고 하면 가장 먼저 적곤 하는 ‘영화관람’ 활동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 때 공부 방법, 진로탐색 방법, 방황, 결심,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 그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겠다 하는 것, 혹은 아쉬움 등이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수능 시험을 다시 치르고 3년 만에 다시 새내기로 입학하게 되어서 그런지 더욱 성실히 학부 생활을 보내야한다는 책임감도 생기는 한편, 저도 모르게 조급한 마음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1학년 1학기부터 졸업학기까지의 전공 수업들과 3학년 여름방학에 있었던 사회복지현장실습, 전공 수업 못지않게 몰입하였던 다양한 분야의 교양 수업까지 되돌아보면 배움과 성장을 위한 충만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뒤늦은 출발을 만회하고 싶은 마음도 앞서서 호기롭게 조기졸업을 신청하고 3년 만에 졸업을 하게 되었는데, 대학원에 진학해서 학업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는 반면, 제가 배운 것을 사회복지현장에서 실천해 보고 싶은 설익은 의욕도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게 되어, 결과적으로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졸업만 일찍 해 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괜히 조기졸업을 하며 스스로를 채근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여전히 25년째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99학번 동기들과 더 많은 시간을 나눌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양한 진로에 진출해 있는 선배님들의 조언도 들어보면서 여유를 갖고 진로를 탐색해 보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에 젖어 보기도 합니다. 어쩌면 먼 길을 돌아 사회복지학과와 만나게 된 제 개인적인 이력으로 인해 그 반작용으로 실패 없는 지름길을 찾아가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더 긴 방황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겠죠.
나에게 맞는 진로를 찾아가기까지 거쳐야 할 과정과 축적해야 할 경험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은 각자에게 고유한 여정이니 우리 후배님들도 각자의 방향과 속도에 따라 진로를 찾아가는 여정을 탐색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직장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어떤 고민의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졸업부터 했다는 저의 부끄러운 고백을 이미 들으셨으니, 졸업 후 진로를 찾아가는(적성은 찾았으나 적성을 구현할 구체적인 직업은 다시 한 번 물음표의 소용돌이 속으로) 여정이 얼마나 험난했을지 이미 짐작하셨을 것 같습니다. 졸업 후에 저는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습니다. 사회복지기관에 취업을 하고자 입사 원서를 내 보다가, 공기업 취업으로 방향을 바꾸어 입사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짧은 경력이지만 공공기관에서도 근무해 보고, 그 보다 더 짧은 기간 사회복지기관에서도 일을 해 보았습니다. 부끄러워서 자세히 더 말할 수 없는 이력은 직접 대면의 기회가 생길 때 용기를 내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제 시행착오가 후배님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요.
학부 시절 미학이나 문화·예술 계통의 교양 과목도 무척 흥미롭게 수강하였던 저는 ‘문화복지’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일종의 일탈을 시도하여 타 대학의 문화연구 협동과정 대학원에도 진학을 하게 됩니다. 2년의 석사 과정을 수료하였으나 논문에 대한 상을 잡지 못하고 또 다시 거대한 물음표 앞에 선 그 때, 저희 아버지가 새롭게 도입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제도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며, 긴 방황 속에서도 제가 놓지 않고 있었던 ‘사회복지’를 법학 공부와 접목하여 공익 분야의 변호사로 길을 개척해 보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우연히도 오랜만에 연락을 주신 친척 분도 제 안부를 물으시더니 로스쿨 도입 소식을 듣고 제 생각이 나서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다고 하셨고요.
그전까지 ‘변호사’가 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지만, 학부 시절 사회복지법제론 수업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며, 사회복지와 법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로스쿨이 추구하는 특성화 영역 중에 공익·인권 분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비전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려고 했던 2008년도에 제 나이가 이미 만으로 31세였기 때문에 진학에 실패할 경우 부담이 더 크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그 당시 부활주일을 앞두고 진행되었던 새벽기도회에 난생 처음 매일 출석을 하며 기도하는 중에(학부 시절에 ‘빛과 소금’이라는 과내 기독인 모임에도 참여했는데, 지금도 카톡방에서 틈틈이 안부를 나누고 있습니다)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지게 되어 매일 조금씩 제 방식대로 준비해 보기로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감사하게도 2009년도에 1기로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으며, 3년의 과정을 마친 후 2012년도에 졸업을 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던 당시 학교 게시판에 올라온 법무부의 법률홈닥터 채용 설명회 공고를 보고 바로 제가 기다려오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졸업 후에 유일하게 법률홈닥터 채용에만 지원하였습니다.
지금 직장에서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사회복지학 전공이 현재 직업 생활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2012. 5.부터 지금까지 법무부 인권국 인권구조과에 소속되어 법률홈닥터 변호사로 근무해 오고 있습니다. 저는 법무부에 채용된 변호사이지만 근무 기관은 법무부가 아닌 서울특별시사회복지협의회입니다. 제가 졸업 후에 유일하게 법률홈닥터 채용에만 지원한 이유를 밝힐 겸 법률홈닥터 제도에 대해서 소개해 드려야겠네요.
법률홈닥터 변호사가 배치된 기관 및 지역의 특성에 따라 업무 방식이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제 업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은 사회복지기관 출장상담입니다. 정기출장 기관은 거의 대부분 지역사회 노인복지관이며, 법률상담 수요가 있을 때 수시로 사회복지기관에서 출장 상담을 요청해 주시기도 합니다. 법률홈닥터의 법률복지서비스는 단순히 1회적 상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이 겪고 있는 법률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일종의 사례관리와도 유사한 형태로 지속적인 법률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수개월에 걸쳐 법률상담이 진행되기도 하고, 한 분의 의뢰인이 여러 사안으로 법률상담을 요청해 주셔서 복합적인 사례관리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법률상담을 받고 있는 의뢰인 분들이 서류 준비 등 절차 진행에 어려움을 느낄 경우에는 구청의 통합사례관리사 분들이나 사회복지기관의 사회복지사 분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법률홈닥터는 사회복지사 분들과의 협업을 통해 종합적인 법률복지서비스를 실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침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였기에 복지관에 법률상담이나 법률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출장을 가는 일이 친숙하게 느껴졌으며, 의뢰인 분들과 상담을 할 때 사회복지상담의 중요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청과 공감’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이자 사회복지사로서 상담을 할 수 있어서 보다 심층적인 법률복지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선생님의 진로를 따라가기 위해서 학생들은 어떠한 준비들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준비하는게 유리할까요?
법률복지서비스 업무를 전담하는 법률홈닥터 변호사가 되려면 우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야 하므로,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로스쿨 입학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로스쿨을 졸업한지 오래되어서 아마도 제가 로스쿨 진학에 대한 정보를 전해드리는 것보다는 최근에 졸업한 다른 선배들로부터 생생한 정보를 얻는 것이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제가 1기로 로스쿨 입시를 치렀을 때와는 입학 전형이나 제도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고요.
로스쿨 졸업 후 법률홈닥터 변호사로 취업을 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사회복지학 전공자들은 이미 유리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률홈닥터 채용 공고에 안내된 우대사항에 ‘국가공인 사회복지사 자격증 및 사회복지 관련 학위 소지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조기졸업을 한 덕분에 운이 좋게도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시험 없이 학점 이수만으로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법률홈닥터 업무를 하다보면 다양한 법률복지 자원을 활용하게 될 때가 많으므로, 로스쿨 재학 중에 공익·인권 분야와 관련된 기관에서 다양한 실무수습 경험도 쌓고, 기회가 되면 공익·인권 학회 활동에도 참여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지금의 직장에 대해서 만족하시나요? 현재 직장의 근무여건, 미래전망,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 등이 궁금합니다.
사회복지현장에서 취약계층 분들에게 법률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로 근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률홈닥터 업무에 만족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의뢰인 분들의 다양한 사례에 귀 기울이며 공감하고, 법률복지 영역에서 상담자의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제 성격 유형에도 지금의 업무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또한 사회복지사 분들과도 상호작용을 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보람과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업무가 흔히들 법조 직역에 대해 기대하듯이 경제적으로 많은 보상이 따르는 일은 아니지만, 법률복지서비스라는 고유한 업무 영역에 내포된 사회적 가치가, 법률홈닥터와 법률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고, 더 나아가 삶이 변화되는 구체적인 성과들로 빚어져 나오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는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법률복지 분야의 직역에 대한 경제적 보상 또한 늘어난다면 더 많은 분들이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부담 없이 소신을 갖고 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법률홈닥터 업무를 하면서 억지를 부리거나 안타깝게도 무례한 행동을 하는 의뢰인 분들도 간혹 만나게 되어 속상한 순간도 있지만, 그보다는 저희의 작은 도움에도 고마움을 표현해 주시며 저희를 미소 짓게 하는 분들이 더 많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앞서 후배님들에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처럼 20대의 시작부터 진로를 찾아 헤매느라 상대적으로 제게 맞는 일을 찾아 정착한 기간이 짧은 편입니다. 법률홈닥터 변호사로 첫 발을 떼었을 때가 만 나이로 35세였으니까요.
그래서 미래의 계획이라고 하기에는 평범하게 들릴 수도 있는 답변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 꾸준히 법률홈닥터로서 자리를 지켜서 가능하다면 정년도 채우고, 무엇보다도 법률홈닥터 제도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밑거름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현재 법률홈닥터 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1기로서 법률홈닥터의 지나온 발자취를 정리하고, 훌륭한 동료 변호사님들과 함께 법률홈닥터 제도가 발전해나갈 방향도 같이 모색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보니 뭐가 제일 중요하더라, 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예전에는 시행착오의 과정들이 괜히 낭비된 시간인 것만 같아서 자책감에 빠져들곤 하였는데, 지나오고 나니 삶의 그 어떤 경험도 쓸모없거나 헛된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면의 갈등과 방황의 시간들을 겪어 오면서 느끼게 되었던 외로움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지 모를 외로움으로 눈을 돌리게 하면서,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확장되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길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뗄 수 있게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표현처럼 번번이 거듭되는 시행착오로 인해 스스로 상처를 내곤 하였던 제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조금씩 들여다보게 되고 같이 아파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감과 경청의 중요성을 터득해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패와 시행착오의 시간이 아픔과 상처로 다가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 시간들을 잘 견디어내고 의미를 찾아가다 보면, 분명 내 안에 조개 속 진주와 같이 은은하게 빚어져가는 그 무엇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 믿으며 후배님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제 인터뷰를 읽어주실 후배님들을 생각하니 반가움이 앞서서 이미 주어진 분량의 지면을 초과해 길고 긴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말았네요. 저의 진로탐색 여정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며, 이 글을 쓰면서 떠올랐던 ‘아나스타샤’라는 에니메이션의 OST 중 ‘journey to the past'라는 곡의 가사 일부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one step at a time
one hope, then another
who knows where this road may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