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게 되셨나요? 전공을 선택하면서 가지셨던 기대나 생각 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사실 사회복지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학과를 선택했다는 것이 가장 솔직한 답일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수많은 사회복지 정책이 도입되어 우리 삶을 받쳐주는 필수적인 제도가 되었고 피부로도 느낄 수 있지만, 제가 입학할 당시만 해도 ‘사회복지’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고 접할 기회도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농촌과 지방 도시에서 자란 저에게 사회복지라는 다소 ‘도시스러운’ 용어를 정확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급변하던 입시 제도도 한몫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당시만 해도 예비고사를 치르고 대학별 본고사를 보는 방식이어서, 학교 역시 1~2학년 때는 영어와 수학 중심으로, 3학년 때는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대비하는 체제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5월 무렵, 이 제도가 통째로 바뀌었습니다. 과외가 금지되고 재학생의 학원 수강도 금지되면서 소위 ‘학력고사’가 도입된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시험 점수로 대학을 정하고, 학과는 1지망, 2지망, 3지망을 선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내신 반영 기준도 초기에는 3학년 내신만 반영하다가 저희 기수부터 3개년 전체를 반영하는 등 매우 복잡하게 변했습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학과를 선택할 때 ‘꿈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깊이 고민했습니다. 당시 학력고사 체제 아래에서는 학력고사 점수에 맞춰 대학을 우선 선택한 뒤, 1지망에는 현실적인 선택을, 2지망에는 꿈을 선택하는 것이 일종의 흐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2지망에 적어 낸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꿈을 꾸듯이 말입니다.
실제로 사회복지학과가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입학 직후에는 학과 공부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못했습니다. 당시 대학가가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저항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학내에 팽배했던 억압적인 분위기 탓도 있었고, 2지망을 선택해 들어온 친구들이 많았던 학과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한몫을 했습니다. 입학하자마자 연극반에 들어가 활동했고, 거기서 만난 선배의 권유로 비공개 동아리라고 할 수 있는 소위 ‘언더 써클’에도 가입했습니다. 그래서 1학년 때는 학과 활동보다는 연극반과 언더 써클에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2학년 때에는 써클의 요청으로 구로 지역에서 야학을 운영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구로에서 보냈습니다.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과 본격적인 탐구는 군 복무를 마친 3학년 때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대학 생활 자체가 3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공서적을 다시 펼쳐 읽기 시작했고, 선배들의 진로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한편, 졸업 후를 걱정하는 복학생 동기들의 고민도 귀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입대 전 시들시들했던 학점을 끌어올리는 데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공부와 진로탐색 방법, 방황 또는 결심,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 그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겠다 하는 것 등이 궁금합니다.
복학 이후 진로를 탐색할 때 우선 원칙을 세웠습니다. 바로 ‘기존의 내가 했던 선택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2지망이지만 사회복지를 선택한 제 삶, 연극과 언더 써클과 야학을 경험하면서 체득한 공동체 발전에 대한 관심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범위 안에서 진로를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저의 장점을 살리고,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길이자, 저를 지켜보시는 많은 사람들도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친구들도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과 친구들의 진로를 보면 대학원 진학, 기자, 행정고시를 준비한 친구들이 다른 기수에 비해 유난히 많았습니다.
직장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이 직장에 오기 전 어떤 직장에 계셨는지, 어떤 고민의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보건복지부에 들어가 사회복지를 발전시키고 복지국가를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는 방향으로 진로를 잡았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장애인, 노인, 취약계층의 복지를 확대하고, 권리를 확장하며, 나아가 일반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사회가 일정 수준까지 책임지는 정책을 만드는 핵심적인 기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정책 수립을 담당하는 기관이 국회나 지방자치단체, 대학과 연구기관, 시민단체 등으로 확대되었지만, 진로를 결정할 1980년대 말에는 정부 정책, 특히 복지정책은 행정부가 사실상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학 후 3학년 2학기부터 보건복지부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고, 행정대학원을 거쳐 1994년에 보건복지부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조금 늦은 선택이었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사회복지학 전공이 현재 직업 생활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합니다.
사회복지학과 학생이라면 보건복지부나 주요 복지정책에 대해 많이 접하셨을 테니 별도의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대신 제가 그동안 담당해 왔던 업무들을 소개하며, 보건복지부가 실제로 어떤 일을 수행하는 곳인지에 대한 심도있는 설명으로 공직 진출에 관심을 가진 분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고자 합니다.
1) 공직의 시작과 현장 행정 경험
처음 발령받은 곳은 국립춘천정신병원 서무과장이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인력을 충원하고, 시설 및 환자의 입퇴원을 관리하여 병원이 제 기능을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현장 행정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다만 초임사무관을 기관 서무과장으로 발령 내던 당시의 관행은 사라져 현재는 곧바로 보건복지부 본부에 배치받게 됩니다.)
2) 보건복지부 본부에서의 첫 업무와 건강보험 정책
보건복지부 본부에서 처음으로 배치받은 곳은 건강보험을 담당하는 보험정책과였습니다.
사회보험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그 재원으로 국민 건강 보호에 필요한 의료서비스와 의약품, 의료기기 등을 구매하는 사회보험 체계를 운영하는 곳입니다. 당시에는 건강보험 조직형태를 단일보험으로 할지, 일본처럼 직장조합과 지역조합으로 나눌지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대립 중이었습니다. 이에 어떠한 보험체계가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의료서비스 보장성, 보험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적합한지 평가하고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결정하는 일을 주로 맡았습니다. 물론 건강보험정책을 집행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것도 담당했습니다. 조합 간 재정조정을 통한 보험료 형평성 제고, 급증하는 재정을 통제하기 위한 재정안정화방안 수립 등이 그 예입니다.
건강보험은 공직 생활 전체에 걸쳐 끊이지 않고 접했던 핵심 이슈였습니다. 보험정책과장 때는 지금의 건강보험료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작업에서 대안을 마련하는 단계에 있었고, 의료자원과장 때는 새로운 의료기술이 보다 신속하게 건강보험에 적용되도록 하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에 근무할 때는 국내 제약회사들의 신약 개발 관심과 투자를 확대하고 희귀난치 질병에 대한 건강보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보험수가 인상이나 절차 개선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 개선에 개입했습니다.
3) 한국 복지제도의 근간, 기초생활보장제도
다음으로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당시 생활보호법 체계는 근로무능력자를 전제로 생계비를 지원하는 제도였는데, IMF를 거치면서 근로빈곤층이 대거 등장함에 따라 이들과 이들의 가족들의 기초생활 보장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근로능력자에게도 소득이 없으면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그 당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 대안으로 ‘근로조건부 현금 지급’방식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근로무능력자만을 대상으로 집행되던 제도를 근로능력자를 대상에까지 확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행정 기반이 요구되었습니다. 이분들에게 근로조건을 부과하여 자활로 이르게 할 사회복지공무원의 확충과 자활기관 설립 및 운영 그리고 허위소득 신고 방지를 위한 철저한 자산조사체계 도입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반직 사회복지공무원제도가 도입되어 3,000명이라는 대규모 인력이 최초로 채용되었고, 전국 모든 시⸱군⸱구마다 자활센터가 설립되었으며, 조건으로 부여할 자활프로그램이 도입되었습니다. 또한, 개인에게 적절한 자활 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제공하고자, 근로능력 평가체계와 개인별 자활지원계획 제도도 도입되었습니다. 사실상 현재의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근간이 그때 마련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4) 국민연금 개혁과 기초연금 제도 기획
이어 담당한 업무가 바로 국민연금이었습니다. 당시 추진했던 작업은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를 '지역가입자'에서 사업주가 보험료의 50%를 지원하는 '직장가입자'로 전환하는 일이었습니다. 기존에는 소규모 사업주의 부담 능력 부족과 행정적 한계로 인해 근로자가 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지역가입자로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근로자가 사회보험 혜택에서 소외되거나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만드는 문제가 있었기에, 근로자의 권리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영업자분들의 저항이 매우 커서 3단계에 걸쳐 차근차근 도입해야 했습니다.
이후 국민연금 개혁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의 국민연금은 제도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저부담·고수급' 구조로 설계되어 후세대의 희생에 의존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급속한 고령화로 후세대의 부담 능력이 떨어지면서, '보험료는 올리고 연금액은 낮추는' 인기 없는 개혁이 불가피해졌고, 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개혁을 달성하기까지는 그로부터 5년이 넘는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그 후로도 연금개혁 과정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는데요.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했거나 연금 수령액이 적은 현세대 빈곤 노인을 위한 '기초연금'이 국민연금 개혁의 쌍둥이 제도로 등장했습니다. 그에 따라 제가 노인정책과장과 기초연금TF 총괄과장을 맡은 시기에 기초연금 제도의 설계, 도입, 그리고 집행 과정의 일들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당시의 연금개혁은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연금 수령액을 감액하고 수급 연령을 늦춰 지속가능성은 끌어올렸지만, 끝내 보험료 인상에는 실패하여 미완의 개혁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보험료를 인상하는 과제는 그로부터 10여 년이 더 지난 후, 제가 대통령실 보건복지비서관으로 재직할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5) 청와대 파견과 범부처 저출산고령사회 대책
청와대에 파견 시에는 빈곤아동종합대책, 근로빈곤층 종합대책, 근로빈곤층 대책으로서 EITC 도입 등을 담당했습니다. 청와대는 프로젝트 단위로 업무를 기획하고, 관련되는 모든 부처를 모아 대책을 수립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각 부처들이 전문성을 갖고 있으나 이런 저런 한계로 인하여 대규모 대책을 수립하기 어려운 경우 취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보건복지부로 복귀한 후 과장 보직을 맡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을 수립했습니다. 이때에는 범부처가 모여 저출산 현상과 고령사회에 대비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함에 있어 중추적인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범부처 파견인력과 전문가들이 모여 다차원적 대안을 정책화 하였으나, 발표 당시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저출산에만 집중되어 고령사회 대응에 관한 정책은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업무의 범위가 워낙 방대하다보니 보육국장, 아동정책국장, 인구정책실장, 대통령실 보건복지비서관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6) 노인 돌봄 정책 기획과 의료자원 관리
이후 노인정책과장 시절에는 연금개혁의 한 축으로서 기초연금을 기획하는 일과 더불어 고령사회에 대비한 각종 돌봄정책을 도입하고 기획하였습니다. (맞춤형 돌봄, 장기요양보험, 노인일자리 사업, 여가시설인 경로당과 노인복지관 확대 등이 도입 준비 또는 확대 시기에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의료자원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의료자원정책과장 보직을 맡아 의료인력, 의료기기, 의료기술의 적정 수급과 안전을 관리했습니다. 제가 재임하던 2012년 당시에도 의료인력이 부족해 간호사, 치료사 등 인력을 큰 폭으로 늘렸으나 의사 인력 증원 시도는 의료계의 반대에 가로막혀 실제 증원까지 10여년 이상의 준비기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7) 관리자로서의 리더십
이후 한차례 더 청와대를 다녀온 뒤, 한의약정책국장, 보육국장, 아동정책국장, 복지정책국장, 인구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 대통령실 보건복지비서관을 역임하고 공직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국장 승진 이후에는 통상 관리 업무가 주된 역할을 차지합니다. 이때 정책 목표의 수립과 관리, 목표 달성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과 자원 확보, 집행 실적 관리, 집행과정에서의 성과 및 갈등 관리 등을 통해 소속 부서가 주어진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도록 지원하고, 미진한 부분은 보완하며 관련 부처 및 부서와 협력하여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8) 국장⸱실장 및 비서관 재직 시 담당한 주요 정책

한의약정책국장 시절에는 한의약 과학화와 이를 근거로 한 건강보험 적용에 집중하였고, 아동정책국장 시절에는 아동복지 전달체계를 재설계하는 아동권리보장원 설립,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및 아동보호전담요원 제도 도입 및 배치 등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인구정책실장 시절에는 현재 통합돌봄의 한 축을 이루는 재택의료를 설계하고 도입하였고, 저출산대책에서는 남성 육아휴직 비율 제고를 위한 육아휴직 급여 인상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인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제도들에 대해서 대통령실 보건복지비서관 재직시에도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된 정착과 개선을 위해 힘을 보태었습니다. 보건복지비서관 시절에는 정신건강 대책, 그중에서도 마음투자사업을 설계하고 도입하는데 깊이 관여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우울과 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서비스 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가 본격 도입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가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9) 보건복지 업무의 특성과 사회복지 전공과의 연계
새로운 정책의 도입과 개선을 위해서는 정책 담당 공무원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와 현장 실천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합니다. 담당 공무원은 이들과 만나 정책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상충하는 의견을 조율하며, 대책 수립에 필요한 정치적⸱행정적⸱재정적 자원을 끌어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보건복지 업무는 그 범위가 방대하여 본인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보건복지부에서는 통상 소득보장업무, 사회서비스 업무, 재원조달을 위한 사회보험 업무, 보건의료정책 분야 그리고 조직 전반의 기획과 관리 등 행정업무를 경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처럼 정책을 다루는 게 주 업무이다 보니, 연구나 실천, 언론 분야 등에 종사하는 사회복지학과 선후배를 많이 만날 수 있는 점도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선생님의 진로를 갖기 위해서 학생들은 어떠한 준비들을 해야 할까요?
공직에 입문하려면 시험이라는 큰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긴 준비 기간이 필요하므로 ’공직이 나에게 적합한가‘라는 고민을 미리 미리 해두어야 합니다. 공직도 다른 직장과 같이 가급적 빨리 입직해서 경력을 쌓아 나가는 것이 좋기에 정보 탐색과 함께 현직에 있는 선배나 시험을 준비 중인 선배들을 만나 생각들을 나눠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2학년을 마치기 전에 미리 진행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나중에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할 수도 있지만 본격적인 수험 생활에 들어서면 단기간에 합격하는 것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직에 대한 관심이나 적성 판단, 수험을 견뎌내기 위한 건강 및 생활습관 관리, 시사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일 등은 수험 시작 전에 미리 갖춰 놓은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준비 과정에서 어느 부처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만 반드시 보건복지부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요즘은 어느 부처에나 사회복지와 관련된 업무가 존재하며, 보건복지부에 들어온다고 해서 계속 사회복지 업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공직은 행정을 수행하는 곳이며, 정책 결정, 정책 추진을 위한 자원 동원 및 관리, 정책 집행과 갈등 관리 등이 핵심이기에, 실제 다루게 되는 정책의 내용은 어느 부서(세부 조직)에 있느냐에 따라 더 크게 좌우됩니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의 경우, 보험료를 걷고 재정을 관리하고 하는 일은 국세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확보된 재원을 ’누구를 위해, 어디에 쓸 것인가‘하는 지점에서는 부처 특유의 전문성이 필요해지게 됩니다.
마음의 준비와 부처에 대한 선호가 정해지면 본격적인 시험 준비가 필요합니다. 시험제도는 워낙 변경이 잦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검색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인사혁신처가 주관하는 시험은 1차로 공직적격성평가(PSAT)와 헌법, 영어, 한국사 시험을 치르고, 2차로 전문분야를 포함한 공직 필수능력을 검증하는 논술 4과목, 그리고 3차로 최종 면접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매년 행정직으로 약 200명 안팎을 선발하는데, 보건복지부에 배치될 수 있는 사회복지직은 매년 2명 가량을 선발하지만, 1명만 선발하거나 선발하지 않는 해도 있어서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보니 요즘은 보건복지부에 사회복지직이 아닌 일반행정직 시험을 통해 입문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일반행정직과 재경직 합격자 중에서도 보건복지부를 희망해 입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2025년도부터는 사회복지직 2차 시험 과목이 사회복지학, 사회학, 행정법, 경제학 등 4개 과목으로 대폭 축소되어, 과거에 비해 수험 기간을 줄일 수 있게 되었고, 대학 학업과 시험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에 대해서 만족하시나요? 직장의 근무여건, 미래전망,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 등이 궁금합니다.
공직에 대한 만족도는 개인의 적성이나 관심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대학 입학 과정과 학창 시절 동안의 오랜 고민 끝에 보건복지부에 갈 것을 작정하고 공직을 준비했고, 복지국가의 확장기에 보건복지부에서 다양한 업무를 맡을 수 있어서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보직 경로에 대한 희망, 직위에 대한 기대가 모두 반영되기는 어렵지만 국민의 복지를 향상하고 국가 위상을 높여 우리나라를 더 살만한 나라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마음의 자산입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노력에 따라 외국에서의 수학과 국제기구 근무, 청와대 파견 등을 통해 역량을 쌓고,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과 최고의 의사결정 과정에의 참여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공직이 지닌 매우 소중한 매력 포인트입니다. 다만, 점점 더 늘어나는 고난도 민원과 첨예해진 갈등, 국회 등의 감시와 의사결정 지연, 기대에서 벗어나는 보상과 처우는 공직 입문 전에 반드시 들여다봐야 할 대목입니다.
앞으로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평생 사회복지를 고민하면서 살아왔기에 그 고민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일 수도 있고, 제 역량이 그 분야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직에 있을 때는 책임과 조급함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거기서 벗어난 여유로움 때문인지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근본적인 처방을 모색하는데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특히 고령화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준비, 보건과 복지의 결합, 건강한 사회서비스 공급자 육성 같은 분야에서 연구와 정책 자문, 사회운동과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살아보니 뭐가 제일 중요하더라, 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단계마다 이뤄야 할 삶의 과업이 있고, 그 과업은 그 시기에 이루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더 많은 성취와 중요한 목표를 위해 당장 사소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미루기도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지연된 성취가 결국은 다른 무엇인가의 희생 위에 얻어진 것일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이라면 4년의 대학생활 동안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경중을 가리긴 어려워도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는 벌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여러분은 창창한 미래를 앞두고 있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삶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인생으로 극적인 전환을 이루는 것도 의미 있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것을 인정하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는 것이 미래 시점 어디에선가 삶을 관조해볼 때 의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선배이자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사회복지는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드는데 필수적인 학문이며,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는 연구와 실천 분야 모두에서 중추적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사회복지는 환경의 변화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합니다. 우리 세대는 복지국가를 만들고 확장하는 과업을 수행해왔다면, 지금 사회복지에 입문하는 후배들은 이를 고도화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과업을 수행해 우리 사회를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주시길 기원합니다.
어떻게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하게 되셨나요? 전공을 선택하면서 가지셨던 기대나 생각 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사실 사회복지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학과를 선택했다는 것이 가장 솔직한 답일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수많은 사회복지 정책이 도입되어 우리 삶을 받쳐주는 필수적인 제도가 되었고 피부로도 느낄 수 있지만, 제가 입학할 당시만 해도 ‘사회복지’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고 접할 기회도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농촌과 지방 도시에서 자란 저에게 사회복지라는 다소 ‘도시스러운’ 용어를 정확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급변하던 입시 제도도 한몫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당시만 해도 예비고사를 치르고 대학별 본고사를 보는 방식이어서, 학교 역시 1~2학년 때는 영어와 수학 중심으로, 3학년 때는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대비하는 체제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5월 무렵, 이 제도가 통째로 바뀌었습니다. 과외가 금지되고 재학생의 학원 수강도 금지되면서 소위 ‘학력고사’가 도입된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시험 점수로 대학을 정하고, 학과는 1지망, 2지망, 3지망을 선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내신 반영 기준도 초기에는 3학년 내신만 반영하다가 저희 기수부터 3개년 전체를 반영하는 등 매우 복잡하게 변했습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학과를 선택할 때 ‘꿈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깊이 고민했습니다. 당시 학력고사 체제 아래에서는 학력고사 점수에 맞춰 대학을 우선 선택한 뒤, 1지망에는 현실적인 선택을, 2지망에는 꿈을 선택하는 것이 일종의 흐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2지망에 적어 낸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꿈을 꾸듯이 말입니다.
실제로 사회복지학과가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입학 직후에는 학과 공부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못했습니다. 당시 대학가가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저항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학내에 팽배했던 억압적인 분위기 탓도 있었고, 2지망을 선택해 들어온 친구들이 많았던 학과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한몫을 했습니다. 입학하자마자 연극반에 들어가 활동했고, 거기서 만난 선배의 권유로 비공개 동아리라고 할 수 있는 소위 ‘언더 써클’에도 가입했습니다. 그래서 1학년 때는 학과 활동보다는 연극반과 언더 써클에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2학년 때에는 써클의 요청으로 구로 지역에서 야학을 운영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구로에서 보냈습니다.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과 본격적인 탐구는 군 복무를 마친 3학년 때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대학 생활 자체가 3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공서적을 다시 펼쳐 읽기 시작했고, 선배들의 진로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한편, 졸업 후를 걱정하는 복학생 동기들의 고민도 귀에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입대 전 시들시들했던 학점을 끌어올리는 데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공부와 진로탐색 방법, 방황 또는 결심,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 그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겠다 하는 것 등이 궁금합니다.
복학 이후 진로를 탐색할 때 우선 원칙을 세웠습니다. 바로 ‘기존의 내가 했던 선택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2지망이지만 사회복지를 선택한 제 삶, 연극과 언더 써클과 야학을 경험하면서 체득한 공동체 발전에 대한 관심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범위 안에서 진로를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저의 장점을 살리고,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길이자, 저를 지켜보시는 많은 사람들도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친구들도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과 친구들의 진로를 보면 대학원 진학, 기자, 행정고시를 준비한 친구들이 다른 기수에 비해 유난히 많았습니다.
직장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이 직장에 오기 전 어떤 직장에 계셨는지, 어떤 고민의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보건복지부에 들어가 사회복지를 발전시키고 복지국가를 만드는데 일조하겠다는 방향으로 진로를 잡았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장애인, 노인, 취약계층의 복지를 확대하고, 권리를 확장하며, 나아가 일반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사회가 일정 수준까지 책임지는 정책을 만드는 핵심적인 기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정책 수립을 담당하는 기관이 국회나 지방자치단체, 대학과 연구기관, 시민단체 등으로 확대되었지만, 진로를 결정할 1980년대 말에는 정부 정책, 특히 복지정책은 행정부가 사실상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학 후 3학년 2학기부터 보건복지부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고, 행정대학원을 거쳐 1994년에 보건복지부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조금 늦은 선택이었지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사회복지학 전공이 현재 직업 생활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합니다.
사회복지학과 학생이라면 보건복지부나 주요 복지정책에 대해 많이 접하셨을 테니 별도의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대신 제가 그동안 담당해 왔던 업무들을 소개하며, 보건복지부가 실제로 어떤 일을 수행하는 곳인지에 대한 심도있는 설명으로 공직 진출에 관심을 가진 분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고자 합니다.
1) 공직의 시작과 현장 행정 경험
처음 발령받은 곳은 국립춘천정신병원 서무과장이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인력을 충원하고, 시설 및 환자의 입퇴원을 관리하여 병원이 제 기능을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현장 행정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다만 초임사무관을 기관 서무과장으로 발령 내던 당시의 관행은 사라져 현재는 곧바로 보건복지부 본부에 배치받게 됩니다.)
2) 보건복지부 본부에서의 첫 업무와 건강보험 정책
보건복지부 본부에서 처음으로 배치받은 곳은 건강보험을 담당하는 보험정책과였습니다.
사회보험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그 재원으로 국민 건강 보호에 필요한 의료서비스와 의약품, 의료기기 등을 구매하는 사회보험 체계를 운영하는 곳입니다. 당시에는 건강보험 조직형태를 단일보험으로 할지, 일본처럼 직장조합과 지역조합으로 나눌지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대립 중이었습니다. 이에 어떠한 보험체계가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의료서비스 보장성, 보험재정의 지속가능성에 적합한지 평가하고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결정하는 일을 주로 맡았습니다. 물론 건강보험정책을 집행하고,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것도 담당했습니다. 조합 간 재정조정을 통한 보험료 형평성 제고, 급증하는 재정을 통제하기 위한 재정안정화방안 수립 등이 그 예입니다.
건강보험은 공직 생활 전체에 걸쳐 끊이지 않고 접했던 핵심 이슈였습니다. 보험정책과장 때는 지금의 건강보험료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작업에서 대안을 마련하는 단계에 있었고, 의료자원과장 때는 새로운 의료기술이 보다 신속하게 건강보험에 적용되도록 하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에 근무할 때는 국내 제약회사들의 신약 개발 관심과 투자를 확대하고 희귀난치 질병에 대한 건강보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보험수가 인상이나 절차 개선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 개선에 개입했습니다.
3) 한국 복지제도의 근간, 기초생활보장제도
다음으로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당시 생활보호법 체계는 근로무능력자를 전제로 생계비를 지원하는 제도였는데, IMF를 거치면서 근로빈곤층이 대거 등장함에 따라 이들과 이들의 가족들의 기초생활 보장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근로능력자에게도 소득이 없으면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그 당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했고, 그 대안으로 ‘근로조건부 현금 지급’방식의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근로무능력자만을 대상으로 집행되던 제도를 근로능력자를 대상에까지 확대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행정 기반이 요구되었습니다. 이분들에게 근로조건을 부과하여 자활로 이르게 할 사회복지공무원의 확충과 자활기관 설립 및 운영 그리고 허위소득 신고 방지를 위한 철저한 자산조사체계 도입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반직 사회복지공무원제도가 도입되어 3,000명이라는 대규모 인력이 최초로 채용되었고, 전국 모든 시⸱군⸱구마다 자활센터가 설립되었으며, 조건으로 부여할 자활프로그램이 도입되었습니다. 또한, 개인에게 적절한 자활 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제공하고자, 근로능력 평가체계와 개인별 자활지원계획 제도도 도입되었습니다. 사실상 현재의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근간이 그때 마련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4) 국민연금 개혁과 기초연금 제도 기획
이어 담당한 업무가 바로 국민연금이었습니다. 당시 추진했던 작업은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를 '지역가입자'에서 사업주가 보험료의 50%를 지원하는 '직장가입자'로 전환하는 일이었습니다. 기존에는 소규모 사업주의 부담 능력 부족과 행정적 한계로 인해 근로자가 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지역가입자로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근로자가 사회보험 혜택에서 소외되거나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만드는 문제가 있었기에, 근로자의 권리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영업자분들의 저항이 매우 커서 3단계에 걸쳐 차근차근 도입해야 했습니다.
이후 국민연금 개혁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의 국민연금은 제도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저부담·고수급' 구조로 설계되어 후세대의 희생에 의존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급속한 고령화로 후세대의 부담 능력이 떨어지면서, '보험료는 올리고 연금액은 낮추는' 인기 없는 개혁이 불가피해졌고, 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개혁을 달성하기까지는 그로부터 5년이 넘는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그 후로도 연금개혁 과정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는데요.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했거나 연금 수령액이 적은 현세대 빈곤 노인을 위한 '기초연금'이 국민연금 개혁의 쌍둥이 제도로 등장했습니다. 그에 따라 제가 노인정책과장과 기초연금TF 총괄과장을 맡은 시기에 기초연금 제도의 설계, 도입, 그리고 집행 과정의 일들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당시의 연금개혁은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연금 수령액을 감액하고 수급 연령을 늦춰 지속가능성은 끌어올렸지만, 끝내 보험료 인상에는 실패하여 미완의 개혁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보험료를 인상하는 과제는 그로부터 10여 년이 더 지난 후, 제가 대통령실 보건복지비서관으로 재직할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5) 청와대 파견과 범부처 저출산고령사회 대책
청와대에 파견 시에는 빈곤아동종합대책, 근로빈곤층 종합대책, 근로빈곤층 대책으로서 EITC 도입 등을 담당했습니다. 청와대는 프로젝트 단위로 업무를 기획하고, 관련되는 모든 부처를 모아 대책을 수립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각 부처들이 전문성을 갖고 있으나 이런 저런 한계로 인하여 대규모 대책을 수립하기 어려운 경우 취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보건복지부로 복귀한 후 과장 보직을 맡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을 수립했습니다. 이때에는 범부처가 모여 저출산 현상과 고령사회에 대비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함에 있어 중추적인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범부처 파견인력과 전문가들이 모여 다차원적 대안을 정책화 하였으나, 발표 당시 언론과 국민의 관심이 저출산에만 집중되어 고령사회 대응에 관한 정책은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습니다.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업무의 범위가 워낙 방대하다보니 보육국장, 아동정책국장, 인구정책실장, 대통령실 보건복지비서관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6) 노인 돌봄 정책 기획과 의료자원 관리
이후 노인정책과장 시절에는 연금개혁의 한 축으로서 기초연금을 기획하는 일과 더불어 고령사회에 대비한 각종 돌봄정책을 도입하고 기획하였습니다. (맞춤형 돌봄, 장기요양보험, 노인일자리 사업, 여가시설인 경로당과 노인복지관 확대 등이 도입 준비 또는 확대 시기에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의료자원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의료자원정책과장 보직을 맡아 의료인력, 의료기기, 의료기술의 적정 수급과 안전을 관리했습니다. 제가 재임하던 2012년 당시에도 의료인력이 부족해 간호사, 치료사 등 인력을 큰 폭으로 늘렸으나 의사 인력 증원 시도는 의료계의 반대에 가로막혀 실제 증원까지 10여년 이상의 준비기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7) 관리자로서의 리더십
이후 한차례 더 청와대를 다녀온 뒤, 한의약정책국장, 보육국장, 아동정책국장, 복지정책국장, 인구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 대통령실 보건복지비서관을 역임하고 공직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국장 승진 이후에는 통상 관리 업무가 주된 역할을 차지합니다. 이때 정책 목표의 수립과 관리, 목표 달성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 마련과 자원 확보, 집행 실적 관리, 집행과정에서의 성과 및 갈등 관리 등을 통해 소속 부서가 주어진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도록 지원하고, 미진한 부분은 보완하며 관련 부처 및 부서와 협력하여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8) 국장⸱실장 및 비서관 재직 시 담당한 주요 정책
한의약정책국장 시절에는 한의약 과학화와 이를 근거로 한 건강보험 적용에 집중하였고, 아동정책국장 시절에는 아동복지 전달체계를 재설계하는 아동권리보장원 설립,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및 아동보호전담요원 제도 도입 및 배치 등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인구정책실장 시절에는 현재 통합돌봄의 한 축을 이루는 재택의료를 설계하고 도입하였고, 저출산대책에서는 남성 육아휴직 비율 제고를 위한 육아휴직 급여 인상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인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제도들에 대해서 대통령실 보건복지비서관 재직시에도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된 정착과 개선을 위해 힘을 보태었습니다. 보건복지비서관 시절에는 정신건강 대책, 그중에서도 마음투자사업을 설계하고 도입하는데 깊이 관여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우울과 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서비스 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가 본격 도입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가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9) 보건복지 업무의 특성과 사회복지 전공과의 연계
새로운 정책의 도입과 개선을 위해서는 정책 담당 공무원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와 현장 실천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합니다. 담당 공무원은 이들과 만나 정책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상충하는 의견을 조율하며, 대책 수립에 필요한 정치적⸱행정적⸱재정적 자원을 끌어오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보건복지 업무는 그 범위가 방대하여 본인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보건복지부에서는 통상 소득보장업무, 사회서비스 업무, 재원조달을 위한 사회보험 업무, 보건의료정책 분야 그리고 조직 전반의 기획과 관리 등 행정업무를 경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처럼 정책을 다루는 게 주 업무이다 보니, 연구나 실천, 언론 분야 등에 종사하는 사회복지학과 선후배를 많이 만날 수 있는 점도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선생님의 진로를 갖기 위해서 학생들은 어떠한 준비들을 해야 할까요?
공직에 입문하려면 시험이라는 큰 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긴 준비 기간이 필요하므로 ’공직이 나에게 적합한가‘라는 고민을 미리 미리 해두어야 합니다. 공직도 다른 직장과 같이 가급적 빨리 입직해서 경력을 쌓아 나가는 것이 좋기에 정보 탐색과 함께 현직에 있는 선배나 시험을 준비 중인 선배들을 만나 생각들을 나눠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2학년을 마치기 전에 미리 진행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나중에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할 수도 있지만 본격적인 수험 생활에 들어서면 단기간에 합격하는 것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직에 대한 관심이나 적성 판단, 수험을 견뎌내기 위한 건강 및 생활습관 관리, 시사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일 등은 수험 시작 전에 미리 갖춰 놓은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준비 과정에서 어느 부처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다만 반드시 보건복지부여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요즘은 어느 부처에나 사회복지와 관련된 업무가 존재하며, 보건복지부에 들어온다고 해서 계속 사회복지 업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공직은 행정을 수행하는 곳이며, 정책 결정, 정책 추진을 위한 자원 동원 및 관리, 정책 집행과 갈등 관리 등이 핵심이기에, 실제 다루게 되는 정책의 내용은 어느 부서(세부 조직)에 있느냐에 따라 더 크게 좌우됩니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의 경우, 보험료를 걷고 재정을 관리하고 하는 일은 국세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확보된 재원을 ’누구를 위해, 어디에 쓸 것인가‘하는 지점에서는 부처 특유의 전문성이 필요해지게 됩니다.
마음의 준비와 부처에 대한 선호가 정해지면 본격적인 시험 준비가 필요합니다. 시험제도는 워낙 변경이 잦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검색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인사혁신처가 주관하는 시험은 1차로 공직적격성평가(PSAT)와 헌법, 영어, 한국사 시험을 치르고, 2차로 전문분야를 포함한 공직 필수능력을 검증하는 논술 4과목, 그리고 3차로 최종 면접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매년 행정직으로 약 200명 안팎을 선발하는데, 보건복지부에 배치될 수 있는 사회복지직은 매년 2명 가량을 선발하지만, 1명만 선발하거나 선발하지 않는 해도 있어서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보니 요즘은 보건복지부에 사회복지직이 아닌 일반행정직 시험을 통해 입문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일반행정직과 재경직 합격자 중에서도 보건복지부를 희망해 입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2025년도부터는 사회복지직 2차 시험 과목이 사회복지학, 사회학, 행정법, 경제학 등 4개 과목으로 대폭 축소되어, 과거에 비해 수험 기간을 줄일 수 있게 되었고, 대학 학업과 시험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에 대해서 만족하시나요? 직장의 근무여건, 미래전망,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 등이 궁금합니다.
공직에 대한 만족도는 개인의 적성이나 관심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대학 입학 과정과 학창 시절 동안의 오랜 고민 끝에 보건복지부에 갈 것을 작정하고 공직을 준비했고, 복지국가의 확장기에 보건복지부에서 다양한 업무를 맡을 수 있어서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보직 경로에 대한 희망, 직위에 대한 기대가 모두 반영되기는 어렵지만 국민의 복지를 향상하고 국가 위상을 높여 우리나라를 더 살만한 나라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마음의 자산입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노력에 따라 외국에서의 수학과 국제기구 근무, 청와대 파견 등을 통해 역량을 쌓고,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과 최고의 의사결정 과정에의 참여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공직이 지닌 매우 소중한 매력 포인트입니다. 다만, 점점 더 늘어나는 고난도 민원과 첨예해진 갈등, 국회 등의 감시와 의사결정 지연, 기대에서 벗어나는 보상과 처우는 공직 입문 전에 반드시 들여다봐야 할 대목입니다.
앞으로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평생 사회복지를 고민하면서 살아왔기에 그 고민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일 수도 있고, 제 역량이 그 분야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직에 있을 때는 책임과 조급함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거기서 벗어난 여유로움 때문인지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근본적인 처방을 모색하는데 관심이 깊어졌습니다. 특히 고령화가 가져올 미래에 대한 준비, 보건과 복지의 결합, 건강한 사회서비스 공급자 육성 같은 분야에서 연구와 정책 자문, 사회운동과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살아보니 뭐가 제일 중요하더라, 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단계마다 이뤄야 할 삶의 과업이 있고, 그 과업은 그 시기에 이루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더 많은 성취와 중요한 목표를 위해 당장 사소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미루기도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지연된 성취가 결국은 다른 무엇인가의 희생 위에 얻어진 것일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이라면 4년의 대학생활 동안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경중을 가리긴 어려워도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는 벌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인 여러분은 창창한 미래를 앞두고 있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삶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인생으로 극적인 전환을 이루는 것도 의미 있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것을 인정하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는 것이 미래 시점 어디에선가 삶을 관조해볼 때 의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선배이자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사회복지는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드는데 필수적인 학문이며,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는 연구와 실천 분야 모두에서 중추적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사회복지는 환경의 변화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합니다. 우리 세대는 복지국가를 만들고 확장하는 과업을 수행해왔다면, 지금 사회복지에 입문하는 후배들은 이를 고도화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과업을 수행해 우리 사회를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주시길 기원합니다.